항상 옆에서 도움 주시는. 사모님
“전 안의향교 전교(典敎), 전서와 예서ㆍ해서ㆍ행서ㆍ초서 등 한문 오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신다.”
거창군 위천면 황산마을에 서예가 유암(裕菴) 신왕용 옹이 산다. 그는 안의향교 전교(典敎)를 지냈다. 유암 선생은 초제(樵霽) 전종(全棕), 호곡(虎谷) 박영일(朴永一)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사사 받았다.
주요약력으로는 한국서예작가협회 초대작가, 한국서예대전 초대작가, 호남미술협회 삼사위원장, 호남미술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상훈으로는 대한민국서예대전 大賞(대상), 호남미술전국대전 대상 및 광주광역시장상 등이 있다.
미술평론가 김상범은 말한다. “유암 선생의 서예작품을 감상하노라면 무릉도원에서 노니는 기분에 젖어든다. 유암 선생은 해박한 서예 이론, 탄탄한 고법을 바탕으로 격식을 깬 뚜렷한 개성의 작품을 내놓으며 현대 서예를 열고 있다.
전서와 예서ㆍ해서ㆍ행서ㆍ초서 등 한문 오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신다.”
서예는 한문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한다. 한문을 배우고 익히다 보면 풍요로운 감성과 지성을 겸비할 수 있다.
또 서예란 참된 자아에 집중하며 내면의 양식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유암 선생의 작품 중, 마부위침(磨斧爲針ㆍ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이 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산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싫증을 내고 돌아오던 길에 한 노파가 바늘을 만들기 위해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가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아 다시 학문에 정진했다는 데서 유래한 사자성어이다.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努力)과 끈기 있는 인내(忍耐)로 밀고 나가면 성공한다는 이치이다.
필자 조광환은 유암 선생의 마부위침(磨斧爲針)을 본 후, 마음을 가다듬어 몸과 정신을 바로 세웠었다.
수승대 현판 서예를 쓰다
신왕용 수승대 현판 글씨
수승대 현판 글씨에 사용한 붓
수승대 현판에 사용한 먹을 담은 그릇
수승대 현판은 확대한 글씨가 아니고 직접 쓴 글씨이다
유암의 집 뒤에 호음산(虎陰山)이 있다.
호음산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고제면 농산리,위천면 황산리,북상면 갈계리 사이에 있는 산이며, 높이는 930m이다. 북쪽으로 덕유산 자락과 이어지고 있으며 호음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흘러 서쪽 사면으로는 소정천의 지류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황강천의 지류를 이루고 있다.
유암 선생은 이른아침, 호음산을 바라보며, 깊은 심호흡을 한다. 호연지기를 마음 속으로 받아드림으로써 아침을 맞이한다.
호음산 자락 아래 황산마을, 초입에 황산고가(古家) 초입, 수백년 된 안정좌(案亭坐)나무가 있다. 둘레7,3미터, 높이18미터.
동네 전설에 따르면 이 나무는, 세상이 도탄에 빠져들고 어려울 때마다 큰 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는 8• 15광복과 6 •25동란 때 두 차례 크게 울었다고 한다.
한편 이 나무는 신령목이다. 나무 앞에서 기도를 하면 집안이 평온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곳에 유암 신왕용 선생이 쓴 서예체가 있다.
안정좌나무를 지나, 실개천을 따라내려가면 거창의 자랑, 수승대가 보인다. 수승대 현판 글씨가 힘차다. 역시 유암의 서예다.
.수승대 세 글자는 예서체의 중후한 골격을 기본으로 했다.
특히 내리긋는 획은 마치 안정좌나무뿌리처럼 튼실해 보인다.현판 글씨는 보이지 않는 질서로 잘 짜여져, 흐트러짐이 없다.
안정좌나무 뒷쪽 동락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 동네 사람들이 여름철 더위를 피한다.
서예가 유암은 몇 대째 거창군 위천면 황산마을에서 살고 있다. 그는 향리에 존재하는 명승지를 둘러본 후,이 명승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고향의 자랑, 수승대 현판 글씨와 안정좌나무 비석 글을 썼다.
수승대에서 남쪽으로 가면 서덕들이 있다. 서덕들은 영화 “귀향”의 촬영장소로 이름 높다.
이 영화는 일제치하 위안부로 붙잡혀간 시골소녀들의 애환을 그렸다. 거창군 출신 “최리”가 주인공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서덕들, 이곳은 전봇대가 없이 드넓게 펼쳐진105핵타르의 황금들판이다. 이곳에 서덕공원이 있다.
공원 안에는 희귀재래종 수련이 서식한다. 서덕공원을 기점으로 오두산,기백산, 금원산, 현성산, 미폭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유암 선생은 서덕공원 비석에 글씨를 썼다. 왼손으로 붓을 잡고 엄지에 붓꼭지를 눌러 운필하는 악필법으로 글씨를 썼다.
거창군 위천면사무소 면민의 집 입구에 유암 선생의 글씨가 있다.
이름하여 동천(洞天) 원학동이다. 동천을 풀이하면 “하늘에 잇닿음”. “신선이 사는 곳”, “산과 내로 둘러싸인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또달리 풀이하면, 동천은 신선이 노닐던 곳이다.
동(洞)이라는 글자는 물가 수(水)에서 함께 동(同) 살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황산2구로 들어가는 길이 수승대 쪽에도 있지만 당산쪽에서 오는 길도 있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근무하는 장소에 걸려있는 위민봉사
공무원이 면민을 위해서 봉사 하라는 큰 가르침이 보인다.
당산에서 오는길에 쉼터가 있다.
그곳에도 정자가 있다.
이름은 입석정이다.
유암 신왕용 선생은 동천과 같은 향리 위천면 풍경을 찬탄, 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유암 선생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향리, 그 향리에 존재하는 명승지와 면사무소에 의미 있는 글씨를 쓰므로써 위천면을 수호하는 정신적 스승 역할을 하고 있다.
서예작가
본적: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565
성명:신왕용
아호:유암 지산
초제전종 호곡 박영일 선생 사사
사단법인 한국서화작가협회 초대작가
사단법인 전국서화 예술협회 초대작가
사단법인 한국서예대전 초대작가
호남미술협회 초대작가
호남미술협회 부회장
호남미술협회 심사위원장
사단법인 대한민국서예대전(예협)대상 문화부장관상 2005년
호남미술대전 대상 광주시장상 2003년
사단법인 대한민국서화예술대전 삼체상 특선 2014년
호남미술전국대전 특선2011년
대한민국서예총람한국미술관 초청전 2011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2015년
한국미술관 초청전 2017년
2018평창동계올림픽성공기원 세계미술축전
한국미술관 초청전
3.1운동 100주년 기념 대한민국평화미술대축전 우수작가상
후기 위천면 노인회관에는 열쇠가 잠겨서 부득이 올릴수 없었네요
다음을 기약 합니다.
신왕용 무수한 출품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