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태어나고 자랐던 땅(안태고향)은, 대저, 태어난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을 기를 뿐 아니라 웅지를 키우고 마음을 닦아주는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는 땅이 어질면 아름답도다(里仁爲美)”, 슬기롭기를 바란다면 어진 곳을 골라 살라(擇不處仁 焉得知), 풍속이 어진 인자(仁者)의 마을은 아름답다. 살면서 풍속이 인후(仁厚)한 곳을 선택하면 지혜롭다“
나는 어질고 몸과 마음을 닦아주는 땅, 이인위미(里仁爲美), 거창읍 가지리 갈지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지리 갈지마을은 뒷산이 칡덩쿨(葛)같이 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갈지방(加乙旨坊)이었고 개화, 중촌, 갈지, 교촌(開花, 中村, 葛旨, 校村) 등 4개 마을이었다. 고려 충열왕(忠烈王 1270~1300) 때 동정 신원간(同正 愼元幹)이 개성으로부터 외가인 유씨(劉氏)를 찾아와 갈지에서 개척하였다고도 한다.
갈지마을 지명에서 볼 수 있듯이, 갈지 마을은 사람 몸에 이로운, 약성(藥性) 가득한 마을이다. 어느 풍수가는 갈지를 가리켜 천년불패의 땅이요, 사람의 인성을 아름답고 만들어 주는 천하명당이라고 노래한다. 해서 우리 옛어른들은 이 좋은 마을에서 뜻을 키우고 마음을 닦았었다.
가지리의 진산(鎭山)은 건흥산乾興山이다.
건흥산의 명칭은 옛날 산 정상에 ‘건흥사’라는 절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건흥산에 거열산성(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은 신라에 패망한 백제의 충신과 열사 의용군들이 나라를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현재 거열산성의 유적으로 보이는 축대와 우물터, 옛 도로가 남아 있고, 망루를 세운 흔적도 있다. 성이 끝나는 지점 갈림길에서 왼쪽 길은 장백 마을 하산 길이며, 오른쪽으로 약 200m 더 오르면 건흥산 정상에 이른다.
오늘 나는 건흥산 정상에 올랐다. 저마다 웅위와 품자(稟姿)를 지닌 봉우리들과 마주쳤다.
건흥산 정상에서 나는 거창군 전경을 바라보며 다음과같은 다짐을 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내 고향 거창을 위해 보람찬 일을 하고자 한다, 거창을 사랑하고 발전시키는데 미미한 몸을 바쳐 헌신코자 하오니, 거창의 선열들이시여 저에게 올바른 정신을 갖게 해주소서”
이어 하산, 나를 낳아준 아버님 묘에 가 참배를 했다. 전성근 선친 호는 흥산(興山)이다, 아마 모르긴해도 향리 진산 건흥산에서 따온 게 아닐까싶다. 선친은 살아생전 향리 갈지마을 위해 많은 선행을 배푸셨다.
갈지마을 회관 앞에 기념비가 있다. 이름하여 “갈지마을 회관 건립부지 헌성비(獻誠碑)”
비(碑)에, 이런 글이 적혀져 있다.
“서기 1994년 갈지마을 동사무소 회관 건립시 천운 죽산(泉雲 竹山) 전윤상(全潤庠) 소유 부동산을 공(公)의 자, 흥산(興山) 전성근(全宬根) 공께서 마을회관 부지로 마을에 무상으로 희사를 하여, 그 뜻을 기리고자 마을주민들의 뜻을 모아 비를 세우게 되었다. 서기 2022년 12월 갈지마을회”
평생 향리 갈지마을을 사랑하셨다. 마을번영을 위해 사재를 보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셨다. 또 자식들 이 사회에 필요한 동량으로 키우기 위해 노심초사하셨다. 부친께서는 살아생전 자식들에게 당부했다.
“봉사정신을 인생의 최고덕목으로 삼아라. 봉사정신은 섬김과 나눔의 정신이다. 섬김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다. 섬김의 생활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섬기는 사람은 성취감과 자존감이 높고 인정을 베푸는 삶을 살게 되어, 섬김을 받는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된다.”
“나눔은 나와 남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남을 존중하며 마음과 물질을 베푸는 것이다. 나눔의 생활은 나의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삶이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며 사는 것이다. 건강기부, 재능기부, 금전기부가 그런 생활이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은 생명존중과 아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남에게 행복감을 주기 때문에 자신도 행복해 진다”
아버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소생, 거창을 위해 참된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나는 선친 묘 앞에 서서, 또한번 더 다짐을 했다.
나는 오는 3월 8일 전국조합장 동시선거, 거창산림조합장에 출마한다. 선관위에 출마등록을 하기 전 마음을 고쳐잡기 위해 건흥산 그리고 선친 묘를 참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