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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조광환 기자kwa1655@hanmail.net
天’은 大(큰 대) 위에 一(한 일)을 그어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사람을 나타낸 글자로, 사람 위에 하늘이 있다는 데서 ‘하늘’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하늘을 지칭하는 말이 다양하다. 하늘을 형체상에서 말할 때에는 천(天)이라 하고, 주재상(主宰上)에서 말할 때에는 상제(上帝)라 하고, 묘용상(妙用上)에서 말할 때에는 신(神)이라 하고, 성정상(性情上)에서 말할 때에는 건(乾)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일괄하여 부를 때에는 천도(天道) 혹은 천리(天理)라 한다.
영어에서도 천체를 말할 경우는 ‘heaven’, 형태를 말할 경우는 ‘sky’, 신의(神意) 또는 섭리(攝理)를 말할 경우에는 ‘providence’라고 한다.
숫자 일(一)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조물주 창세(創世) 창조를 상징한다. 일신교 종교에서는 창조주 신을 나타낸다. 직립보행하는 종족이란 뜻으로 인류를 상징한다. 남근처럼 불쑥 솟아있는 형상이 남성적 숫자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넘버원, 최고를 상징한다.
거창읍 군청로터리에 천일(天一) 사진관이 있다. 천일사진관은 거창이 자랑할 수 있는 (오래된) 노포(老鋪)다. 원래 천일사진관은 위천초등학교 초입에 있었다. 당시 옥호는 미미(米米)사진관이었다. 쌀이 귀한 시절, 사진관 주인은 우짜든지 우리네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쌀이다! 해서 가게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미미사진관이 필자 초등학교 졸업앨범(1971년)을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10여년전 사진관을 읍내로 옮길 때 부산 작명가에게 복채를 주고 얻은 옥호가 천일이다.
천일사진관 옛주인은 타계하셨고 지금은 아들 성창헌씨가 대를 이어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새해아침, 성창헌씨를 만나 천일 사진관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천일사진관 뿌리는 함양군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는 1980년대 함양읍내에서 예식장 꽃집 롤러스케이트장을 하셨습니다. 그전에 1960년대 거창군 위천면, 그후 거창읍 현재 이곳, 당시 함양, 거창 인구가 많아 사진관 찾는 사람들이 많아 수입이 솔솔찮았다고 해요. 지금은 5G 시대인지라 옛날처럼 사진관을 찾는 고객들이 많지는 않지만, 가업인지라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랜간 사진관을 운영하다보면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이 많겠네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주무대가 한적한 시골 사진관 아닙니까?|
-그렇죠. 초원사진관.“주인공 한석규가 초원사진관 주인인데, (파안대소하며) 그옛날 아버지가 한석규처럼 시골 사진관을 찾는 노인 영정사진도 찍어주시고 그랬답니다. 손상된, 찢어진 조각난 사진을 복원도 시켜주고, 아마 신성범 전국회의원, 위천중학교 출신이죠? 신성범 전 국회의원 고등학교 갈 때 우리 사진관에 와 입학시험 사진 찍었을 겁니다. 김종두 전 거창군의장도 그랬을 것이고”
위천면 출신 김종두 군의원은 회상한다. “당시 미미사진관, 위천면 베스트 원 점포였지, 초등학교 등하교때마다 사진관 진열장에 붙어져 있는 사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찮았지요”
-또다른 에피소드는?
“사진기술도 진화(進化)하잖습니까? 2000년초반 아버지와 함께 거창기능대학에 가 포토샵 기술을 공부했던 게 생각나네요. 당시 아버지, 정말 포토샵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재밌죠?”
성창헌씨는 향교 유도회 회원이다. 젊은 사람이 유림 (儒林) 학문과 예법에 관심이 많다.
“60여 년 동안 천일사진관을 경영 하신 아버지께서는 항상 ‘효’를 강조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강조하셨던 효는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을 모시는 ‘효’에서 더 나아가, 주위의 모든 이웃과 어르신을 공경하고 어려운 이웃을 한번 더 챙겨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천일사진관 주인 성청헌씨 약력을 소개한다.
거창초등 74회, 거창중 39회, 대성고 26회, 가야대학교 세라믹공학과 학사
경상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졸업, 거창농협 대의원, 거창향교유도회 회원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위원, 거창대학발전위원회위원, 상림리 체육회 이사, 대경넥스빌 동 대표, 거창읍주민자치위원회위원, 민주평통자문위원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