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호 함양군의원 눈물로 쓴 思母曲(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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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호 함양군의원 눈물로 쓴 思母曲(사모곡)
  • 조광환 기자
  • 승인 2025.01.2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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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호 의원은 초선의원으로 보기 드문 놀라운 활동을 하고 있다.
아들은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 졸업
조광환 기자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땅은 그 몸을 기를 뿐만 아니라 뜻을 키우고 마음도 닦아준다. 그레서 공자는 말했다. ‘그 사는 땅이 어질면 아름답다(里仁焉美) 슬기롭기를 바란다면 어진곳을 골라 살아라(擇不處仁焉得知).

나는 공자가 말한 어질고 아름다운 땅 함양군 서상면에서 태어나 지금도 이곳 향리에서 살고 있다. 서상면은 예나지금이나 부자마을은 아니다. 하지만 나지막하면서도 저마다의 옹위를 자랑하는 봉우리들이 있어, 자연경관은 나라 안에서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높은 곳에서 흰 물갈기를 날리며 수천수만개의 은구슬로 부서져서 울부짖으며 아래로 내리꼰지는 멋진 부전계곡의 장쾌한 모습은 지금 봐도 대단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

 

서상면은 일망무제(一望無際) 천하명산 덕유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골짝마다 흐르는 물이 마르는 법이 없어 넓지 않은 논밭 곡식들이 알차게 영글게 도와준다. 나는 아버님 양재민 어머님 정외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24녀를 생산하셨다. 아버님은 소작농이셨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으므로 가세가 빈곤하기 그지 없었다.

어머니 안태고향은 서상면 이웃 안의면 하비마을이다. 어릴적 외갓집에 놀러가면 외할머니가 너거 어무이는 어릴 때 항상 반듯했다. 어른들에게 예의가 바르고 부엌일도 아주 잘도 했느니라. 하지만 너그 아부지나 우리나 모두 가난항기 문제다, 우차든동 너그는 후제(나중) 잘 살거라라고 말씀하셨다. 서상면 마을사람들도 어머니를 칭송하였다.

너그어무이는 한마디로 천사표 그자체다, 마을 어려운 사람들 대신 일 도와주고법 업시도 살 수 있는 아지매잉기라하면서도 외할머니가 한 말, 또 했다. “그란디 너그 집에 양석(쌀 보리)은 제대로 있나? 밥은 제때 제대로 묵나?”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그랬다, 제대로 먹지 못했다. 나는 어릴 적 다짐했다. 얼른 어른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집 한 채 사주고 싶다.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몸을 세우고 길을 걸으며 이름을 후세에 떨쳐 부모를 나타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

이릴적, 나는 늘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

 

새해, 정초 110일 어머니가 운명하셨다. 향년 92. 어머니를 양지바른 곳에 묻고 먼 산을 바라보노라니 절로 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내가 고등학교(서상상고)를 마치고 대처로 나가는 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부디 부디대처에서 잘 지내라고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대처로(진주시) 가는 차에 올랐다. 노인은 한없이눈물을 흘리며 버스 창속 아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흔들고 하셨다.

대처로 나간 나, 양인호는 지주 대동공업주식회사 사원으로 들어가 근면성실한 자세로 일했다. 이런 나를 지켜본 회사측은 중요한 일들을 맡겼다. 회사로부터 신임을 받게 된 나는, 마음 속으로 이런 다짐을 했다. “더욱더욱 열심히 일해, 먼훗날 나도 반듯한 회사를 차려보고 싶다이런 각오가 있었길래 회사 다니는 즐거움은 더욱 배가됐다. 아내를 잘 둔 탓일까? 내 슬하 아들놈이 공부를 잘해서 진주 전체3위고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에 들어가는 인생을 기쁨도 있었다.

 

다시 어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돌아간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이후 홀몸이 된 어머니는 서상면 산비탈에서 어렵게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아들딸 손자녀에게 먹일 농작물을 생산했다. 그리고 영각사 등 사찰로 가, 부처님 전에 아들딸 그리고 그 아래 식구들의 안녕을 기도하는 팔품행보살님으로 평생을 사셨다.

 

 

이런 어머니에게 나는 자그마하나마 보답을 하고 싶었다, 해서 집도 지어 드리고 논밭도 사드렸다. 그러나 세월은 어머니를 붙잡아 두지 않았다. 90 이상 사셨으므로 호상(好喪)이긴 하나 아들된 자로서 못내 어머니의 죽음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나는 생전, 어머니의 고달픈 인생을 어루만져 드리지 못하였을까 뒤늦은 후회속에 오열했다.

고단하셨던 한평생을 조용히 내려 놓으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중 하늘나라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이 못난 아들을 기쁘게 안아 주시리라 믿으면서, 너무나 곱디 고우셨던 어머니를 그리워 해본다.

 

                                  노인분만 보이면 다 부모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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