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애호가 함양군민 이태상과 떠나는 주말 갤러리 여행
진행 조광환 기자
裕菴 신왕용 (안의향교) 典敎님 서예작품 감상
見賢思齊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나란히 되기를 생각하고(見賢思齊焉)
견현사제언, 견불현이내자성야”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어떤 모델이 있으면, 우리의 공부는 그 진도가 빠르게 된다. 어렸을 적 한 번쯤 들어보았을 '큰 바위 얼굴'이란 동화가 있다.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위인을 기다리며 그 바위의 얼굴을 매일 바라보던 소년은 청년이 넘고 노경에 이르자, 어느덧 자신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 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바로 곁에 현인이 없더라도 매스컴을 통하거나 소문이나 책을 통해서라도 그를 본받고자 노력할 수 있다.
조선조시대 유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공자와 주자의 초상화를 그려놓고 매일 인사드리면서 그분들을 닮고자 노력하셨다.
'어진 이를 보면 그처럼 되길 생각하라'는 말이다. 또한 '어질지 못한 이를 보면 나도 저러하지 않은지 반성하라'고 했다. 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발전이 있다는 뜻. 공자는 "길벗이 셋이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子曰).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나란히 되기를 생각하고(見賢思齊焉),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스스로 성찰하라(見不賢而內自省也)”
-<논어·이인(論語·里仁)>편
“견현사제언(見賢思齊焉), 견불현이내자성야(見不賢而內自省也)”는 도덕적 소양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장점으로 자신의 단점을 미봉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거울 삼아 굽을 길을 걷지 말라는 의미의 공자의 이 말은 후세 유가의 수신양덕(修身養德)의 좌우명이 되었다.
‘견현사제(見賢思齊)’는 본보기의 시범적 역할을 말하고 ‘견불현이내자성(見不賢而內自省)’는 그 반대의 경계 역할을 한다. 스스로의 성찰을 뜻하는 ‘자성(自省)’의 목적은 바로 주희(朱熹)가 <사서집주(四書集注)>에서 말한 것처럼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여(日省其身),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有则改之), 없으면 더욱 분발(無则加勉)”하기 위함에 있다.
<논어·술이(論語·述而)>에서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는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三人行)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으니(必有我師焉) 좋은 점은 본받고(澤其善者而從之) 나쁜 점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其不善者而改之)”고 이와 유사한 내용을 기술했다. ‘견현사제(見賢思齊)’가 바로 ‘택선이종(澤善而從)’을 말하고 ‘불선자이개지(不善者而改之)가 바로 ‘견불현이내자성(見不賢而內自省)’을 말하는 것이다.
2014년 어린이의 날에 즈음해 시진핑 주석은 베이징 민족 초등학교 간담회에서 ‘마음속에 본보기가 있어야 한다’며 영웅과 선진인물, 좋은 사물을 배우고 배우는 과정에서 사상적 덕행을 추구하라고 어린이들을 격려했다. 그는 <논어>의 이 고전을 인용해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삼아 좋은 것은 배우고, 좋지 않은 것은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상 함양군민은 숨어있는 미술애호가이다.그의 꿈은 함양에 유림(유학자)미술관을 세우는것.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선비들을 말한다. 주로 조선시대의 사대부층을 일컫는다.
조선 초중기의 기득권 선비인 훈구파와 비 기득권 사림파 모두를 지칭하는데에도 쓰이며 이후의 영남, 기호학파 혹은 사색 당파 상관없이 '선비들' 이라는 뜻을 가진다.
조선시대에는 기득권층이었던 '양반' 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계승발전 시키기 위하여 과거시험을 치뤘으며 과거시험은 당연히 유교적인 항목을 기준으로 출제되었던 만큼 유림이라는 단어는 양반, 사대부를 다른 말로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이후 양반이라 하더라도 관직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에 엄밀히 구분하기 위하여 관직을 가진 사대부들과는 대비되어 관직을 가지지 않은 선비들을 포괄하는 단어로도 쓰였다.
구한말에는 유림의 일부가 의병을 조직해서 항일운동에 나섰으며, 일제강점기에도 김창숙 등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대한유림학회 등의 명칭에도 사용되고 있다.
유림을 다룬 유명한 소설로 유림외사가 있고, 최인호도 '유림'이라는 소설을 쓴 바 있다.
'유림' 저자 최인호는 "나는 유교의 시조인 공자로부터 유교의 완성자인 해동 퇴계에 이르기까지 유교의 숲을 주유함으로써 유교가 꽃피운 동양의 찬란한 사상과 황홀한 문화 또한 동양정신이 나은 대사상가들을 지금 이 시대에 시공을 초월하여 부활시킴으로써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참되고 바르게 사는 '인간의 길'을 열어 보이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1권은 공자의 지치주의를 현실정치에 접목시켜보려다 실패하였던 개혁주의자 조광조의 사상과 생애를 다루고 있으며, 2권은 공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세상에 펼쳐 보이기 위해서 춘추전국을 순회하는 전기시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3권은 조광조와는 달리 공자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거경궁리(居敬窮理)하였던 퇴계의 생애를 독자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 6권은 퇴계사상의 골수인 '이기이원론'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또한 우리나라의 사상사 중 대표적인 치열한 논쟁 중 하나였던 기대승과의 편지를 통한 퇴계사상의 발전과, 예순여덟 살의 늦은 나이에 곡부로 돌아와 일흔세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불과 6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인류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경전을 편찬하였으며 위대한 유교의 진리를 선언한 지성 공자의 생애를 공자의 고향 곡부를 통해 되살렸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소설가 최인호는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영가'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왕도의 비밀'(1995, 2004년 '제왕의 문'으로 개제) '상도' '해신' '제4의 제국'등이 있다.